네이키드 런치, 비정상이 그리는 비정상의 향연!

2025. 9. 4. 19:01영화리뷰/1.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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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본 정보

개봉일 : 2025년 06월 25일 (대한민국) / 1991년 12월 27일(미국)
감독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출현 : 주디 데이비스, 피터 웰러, 이안 홀름, 로이 샤이더, 줄리안 샌즈, 니콜라스 캠벨, 마이클 젤니커, 모니크 머큐어
국가 : 캐나
 

- 윌리엄 S. 버로스의 1959년 소설이 원작입니다.
- 1991년작 영화로, 2025년 6월 25일 한국 최초 개봉작 입니다. 
- 컬트영화의 거장이라 부리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영화입니다.
-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은 몽한적이고 아리송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다양한 벌레들의 징그러운 모습들이 가득 나옵니다.

-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서 나오는 온전하지 못하지 않은 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줄거리

해충 방역사 윌리엄 리는 살충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아내 조앤과 함께 그 중독에 휩싸여 살던 그는, 결국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뒤 충격에 휩싸여 현실에서 도망칩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정체불명의 세계, ‘인터존’. 그곳에서는 거대한 벌레가 대화를 걸어오고, 타자기는 살아 움직이며, 인간이 지네로 변해가고, 심지어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혼란과 공포가 소용돌이치는 그 세계에서 윌리엄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데요. 그 끝에서 그가 맞이할 건 새로운 현실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악몽일까요?

 

 

 

3.감상평

[스포일러가 포함된 감상평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머릿속에 맴돈 건 단 하나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본 거지?”

 

1991년에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2025년 6월 25일이 되어서야 한국에서 최초 개봉을 한다는 사실부터, 뭔가 이 영화 자체가 ‘시간을 건너온 낯선 편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침 개봉 시점이 같은 작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또 다른 작품 「퀴어」와 연계된 듯 보여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도 동일하고, 두 주인공 모두 비슷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국적인 도시에서 현실과 환상속에서 배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컬트영화의 거장’이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습니다. 크로넨버그는 늘 신체와 정신, 그리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뒤흔들어 놓는 방식으로 관객을 시험하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진 특유의 집요한 상상력이 가장 노골적이고도 현란하게 펼쳐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방역사 윌리엄 리가 아내의 중독 문제와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리다가 아내를 총으로 쏘는 사건을 저지른 뒤, ‘인터존’이라는 이름의 기묘한 세계로 빠져드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문제는, 이 ‘과정’을 따라간다고 해서 명확히 이해가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며, 심지어 누군가의 몽상이나 소설 속 문장 한 줄 같기도 합니다.

 

 

화면에 가득한 건 온갖 벌레들입니다. 징그럽다 못해 불쾌감을 줄 만큼 세밀하게 묘사된 곤충들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혐오스러움’으로 끝나지 않고 묘하게 상징적인 느낌을 남깁니다. 거대한 벌레가 말을 걸어오고, 타자기가 살아 움직이며, 심지어 그 타자기는 벌레와 뒤섞여 변형되기도 합니다. 현실이라 부르기엔 너무 기괴하고, 꿈이라 하기엔 너무 생생한 장면들이 이어질수록, 제 머릿속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서 나오는 온전하지 못하지 않은 글’에 대한 이야기다.


즉, 버로스라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중독, 혼란, 죄책감 같은 내면의 파편들이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비정상적이고도 왜곡된 방식으로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중독’이자 ‘치유’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원작 작가인 윌리엄 S. 버로스는 이 소설을 기점으로 컷업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문장을 잘라내어 무작위로 재배열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인데요.  영화속에서도 지인들이 그가 거실에 펼쳐놓은 글들을 읽어보며 정리해주는 장면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결코 친절하지 않습니다. 선형적인 줄거리도 없고, 캐릭터 간의 관계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당황스럽고, “이게 무슨 의미일까?”를 끝없이 묻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친절함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해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어떤 끝으로 달려나가게 될지 궁금증만 가득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이해하려 하면 괴롭고, 그냥 받아들이면 묘하게 빠져드는’ 경험을 남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겐 불쾌한 악몽으로, 또 어떤 사람에겐 도무지 잊히지 않는 예술적 체험으로 남을 겁니다. 저에게는 분명 후자였습니다. 다 보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서 벌레들의 이미지와 뒤틀린 타자기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으니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절대 다수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컬트영화의 거장’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를 증명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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