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왕관

2025. 10. 29. 19:01영화리뷰/1.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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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본 정보

개봉일 : 2025년 9월 24일  (대한민국)
감독 : 박찬욱
출현 :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국가 : 대한민국
관람일 : 2025년 9월 24일 
 

-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입니다. 

- 제58회 시체스영화제 감독상 수상하였습니다.
- 역할의 크기와 관계없이 캐스팅이 화려합니다. 
-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들이지만, 어딘가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같았습니다.
- 화면 곳곳에 담긴 미술이 어느 하나 놓칠 수 없게 빼어난 영화였습니다.
- 어쩔 수 없었던 가장의 선택이 어딘가 씁쓸함을 남겨주었습니다.

 

2.줄거리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는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이 많은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삶을 살던 중 갑작스럽게 장어 선물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게 됩니다. 부인과 아들, 딸이 있는 가장 만수는 석 달 안에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마트에서 일하며 버티던 중 집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 만수는 마지막 희망으로 제지회사 [문 제지]를 찾아가지만 그의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자신과 딱 맞은 그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자치하고 있었고, 후보들 역시 그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낀 만수는 결국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 선택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연결되어 흘러가게 됩니다. 만수는 [문 제지]에 취직할 수 있을까요?

 

 

 

3.감상평

[스포일러가 포함된 감상평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은 개봉 전부터 너무 기대가 컸던 작품이라, 개봉 날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리뷰를 쓰려는 사이 제58회 시체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 수상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화면의 힘, 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 그리고 이야기의 밀도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화려한 캐스팅이었습니다. 단순히 유명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자기 몫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나갔습니다. 주연 못지않게 조연들의 연기도 빛을 발했고, 작은 장면에서조차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는 스크린을 꽉 채우며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물 하나하나가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자녀로 나왔던 아역배우까지 모두 몰입감을 높여 주었습니다.

 

 

 

줄거리 자체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묘한 친숙함이 스며듭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건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있을 법한’ 느낌이 이 작품을 단순한 상상이 아닌, 우리 사회와 맞닿은 현실의 또 다른 단면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관객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극적인 선택을 지켜보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 영화는 스크린을 넘어 현실로 이어집니다.

 

 

 

이야기의 힘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건 화면의 미술적 완성도였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오랜 파트너인 류성희 감독 특유의 세심함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드러났습니다. 색감과 소품, 구조물 하나하나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장치처럼 기능합니다. 마치 한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듯, 관객은 화면 곳곳을 자연스레 탐색하게 되고 그 안에서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불안하게 다가오는 색채와 구도는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강렬한 경험이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까지 마음에 오래 남은 건 만수라는 인물의 입체감이었습니다. 그가 만나고 제거했던 그들은 그의 일부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지만, 그 씁쓸함은 단순히 캐릭터의 서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 있을 법 하지만, 블랙코메디 처럼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이야기들이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주는것 같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던 건 단순히 극적 긴장 때문이 아니라 영화속 이야기의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처럼 자신 안의 페르소나들을 지우고 도구화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번 신작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오락 영화가 아닙니다. 인물이 느껴지는 가장으로써의 무게감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압박이 빚어내는 긴장을 정교하게 담아냈습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화면 곳곳에 숨겨진 미술적 장치들이 더해져, 보는 내내 몰입하게 만들고 끝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기다려온 분들이라면 이번 작품 역시 만족도가 높을 것 같습니다. 꼽씹어 보는 매력이 있는 숨겨진 비유와 블랙코메디의 감성이 잘 담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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