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10. 19:04ㆍ영화리뷰/1.극장에서

1.기본 정보
개봉일 : 2026년 2월 4일 (대한민국)
감독 : 장항준
출현 :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 이준혁, 특별출현 : 이준혁, 박지환
국가 : 대한민국
관람일 : 2026년 2월 8일
- 장항준 감독의 6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 입니다.
- 역사가 스포일러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 출현하는 모든 배우가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 엔딩에는 눈물을 펑펑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흔하게 묘사되었던 역사적인물을 새롭게 담으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2.줄거리
계유정난으로 조정이 크게 흔들린 뒤, 어린 왕 이홍위는 끝내 왕위에서 축출되어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향한 곳은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을, 광천골입니다.
한편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궁핍한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지정받고자 힘을 쏟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배인을 광천골로 들여보내 마을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촌장이 기대 속에 맞이한 인물은 뜻밖에도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였습니다.
유배지를 관리하는 보수주인으로서 촌장은 이홍위의 일상을 감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조용히 무너져가는 이홍위의 모습은, 감시자의 시선만으로는 끝내 외면하기 어려운 흔들림을 남깁니다. 지켜야 하는 의무와 지워지지 않는 연민 사이에서 촌장의 마음은 조금씩 균열을 맞이하게 됩니다.
1457년 청령포.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가 다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3.감상평
[스포일러가 포함된 감상평입니다.]

영화를 관람한 뒤 가장 먼저 뇌리에 남은 인상은 단연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었습니다. 서사 전개나 구성 면에서 다소 아쉬운 지점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배우들은 탁월한 몰입감으로 그 빈틈을 훌륭하게 메워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적 인물들은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친숙하게 재해석되었으며,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 또한 마치 광천골 어딘가에 실재하는 듯한 생생한 현실감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박지훈 배우가 연기한 단종은 전율이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존 배우가 가진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졌고, 그 자리를 단종이라는 인물이 온전히 채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리고 연약한 왕의 피폐해진 내면과, 그럼에도 왕족으로서 끝내 놓지 못하는 기품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연기였습니다. 맞춤옷을 입은 듯한 캐스팅과 설득력 있는 표현력은 단종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틋함을 더욱 깊게 각인시킵니다.

유지태 배우가 형상화한 한명회 역시 독보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간신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결을 가진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압도적인 외형과 분위기는 그가 단순히 간교한 술책만으로 오랜 시간 권력의 중심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익숙한 역사 속 인물이 유지태라는 배우의 숨결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유해진 배우가 분한 촌장의 존재감 또한 상당합니다. 자칫 정형화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 대신 시대의 공기를 가득 머금은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부족할 수 있는 서사의 여백을 연기로 채우며, 해학과 비애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해진 배우 특유의 내공을 감상하는 재미가 확실합니다. 이처럼 배우들은 각자의 비중을 떠나 제 몫을 충실히 수행하며 관객이 극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합니다.



이번 작품은 장항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감독 특유의 리듬감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선의 깊이는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고 진지하게 파고듭니다. 연출 기교가 화려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야기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나가는 뚝심이 느껴집니다. 특히 단종의 마지막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익스트림 줌을 통해 인물의 감정만을 포착해낸 대목은, 감독이 이 비극적인 역사를 얼마나 사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결말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감상을 저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어떻게 그 지점까지 도달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만들며, 그 과정에서 감정을 차분하면서도 꾸준하게 쌓아 올립니다. 덕분에 극이 끝날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게 되며, 엔딩에 이르러서는 억누르기 힘든 감정의 격랑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엔딩 장면은 깊은 여운과 함께 긴 잔상을 남깁니다. 감정을 억지로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밀하게 쌓아 올린 감정선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관객의 마음을 흔듭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감정의 파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린 작품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드는 강력한 힘을 지닌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체감하게 만드는 몰입감이 뛰어납니다. 당분간 단종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박지훈 배우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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